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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는 목숨을 걸고 단심가를 부르지만 초선은 정몽주를 살리려고 순정을 바친다


강병찬 기자 / 입력 : 2018년 08월 12일
ⓒ 대경연합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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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 하여가 vs 단심가



시간 ; 고려 말, 1392년 봄
장소 ; 평안도 개성 일대
등장인물 ; 정몽주, 정도전, 이방원, 초선, 유화, 기생집 하인, 양반1, 양반2, 노인, 다른 양반들, 기생1, 기생2, 다른 기생들, 이방원 측근1, 이방원 측근2, 조영규 (이 작품은 역사기록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첨가하고 각색한 순수 창작물임을 밝혀둔다. 편집자)

제 3 막
막이 오르고 조명이 들어온다. 때는 1392년 4월 4일 미시(未時, 오후 1시에서 3시의 시간대)시 경이며 장소는 개성 자남산 기슭에 있는 이방원의 별장 사랑채이다. 커다란 기와집의 실내가 배경이다. 술상이 펼쳐져 있고 이방원이 측근 두 명과 정몽주가 함께 앉아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초대한 술자리인데 분위기는 약간 긴장이 되어있다.
이방원 ; 시절이 어지러워 세상이 혼란하나, 오랜만에 근심 걱정 모두 내려놓고, 오늘만은 마음 편히 술들을 드십시다. 자 건배들 하시지요.
이방원 측근 1, 2 ; (아첨하듯이 콧소리를 섞으며) 마음 편히 드십시다. 건배~
(다함께 건배를 한다. 이방원이 측근 1에게 사전에 약속된 행동을 하라고 눈짓을 주며 헛기침을 한다.)
이방원 측근1 ; (이방원의 눈치를 살피고는) 요즘 나라의 꼴이 말이 아니외다.
이방원 측근2 ; (이방원과 측근 1과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다) 그러게나 말이오. 폭군은 나라에 해가 되는 법이지요. 폭군에게 충성을 다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중국 은나라의 형제로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멸하자 신하가 천자를 토벌한다고 반대하며 주나라의 곡식을 먹기를 거부하고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는 전해지는 성인이며 충신을 상징한다.)는 현명한 자일까요, 어리석은 자일까요?
이방원 ; 그 문제는 포은 어르신께 여쭤봅시다. (정몽주를 바라보며) 폭군에게도 충성을 다해야만 할까요?
정몽주 ; (불편한 심기를 억지로 참으며) 폭군을 폭군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신하의 도리라고 할 수 있죠.
이방원 ; (음흉하고 심술궂게) 신하가 제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폭군의 버릇이 고쳐지지 않으면요?
정몽주 ; 신하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이방원 ; 가지와 잎이 상한 나무는 다듬을 수 있겠지만 뿌리가 상한 나무는 뽑아내야하지 않겠소?
정몽주 ; (놀랍지만 예상한 듯이 가벼운 헛기침과 함께 침착함을 유지하며) 이보시오 방원, 말이 심한 것 같소이다. (기분이 언짢은 표정을 짓는다) 뿌리가 상하지 않았는데 상했다고 생각하고 억지로 뽑는다면 그것이 더 낭패겠지요.
이방원 ; (능글맞게) 제 말이 좀 지나쳤나요? 허허... 좋은 날에 언짢아하시지 마시지요. 대낮부터 한잔해서 그런지 얼큰한데 제가 노래 한 곡조 올려도 되겠소?
정몽주 ; 그러시지요. 방원.
이방원 ; 네 그럼. (이방원 술자리에서 일어나서 노래를 한다.)
이방원 ; (능글맞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년까지 살아보세
(합석한 측근들이 큰소리로 ‘좋구나’. ‘얼싸 좋고’ 같은 후렴구를 넣으며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정몽주 ;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래를 듣고 박수는 치지 않는다) 오고가는 정이 있는데 주인 노래가 있으면 객도 답가를 하는 것이 도리겠지요?
이방원 ; 천하의 명문장가이신 어르신의 노래를 듣는 것이 영광이지요. 어서 하시지요.
정몽주 네 그럼. (정몽주 일어서서 노래를 한다.)
정몽주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방원과 측근들이 당황해한다. 이방원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방원은 자신의 노래를 이전보다 더욱 세게 부른다.)
이방원 ;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년까지 살아보세.
(정몽주도 이방원의 기에 눌리지 않으며 더욱 세게 부른다.)
정몽주 ;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이방원과 정몽주 서로를 노려보며 동시에 노래한다.)
이방원 ; 이런들 어떠하리
정몽주 ; 님 향한 일편단심
이방원 ; 이런들 어떠하리
정몽주 ; 님 향한 일편단심
이방원 ; 이런들 어떠하리
정몽주 ; 님 향한 일편단심
정몽주 ; (불편한 듯 자리에서 일어서며) 난 이만 들어가 봐야겠소. 오늘 대접 잘 받았소이다.
이방원 ; 조심해서 들어가시지요. (약간 강조하며 의미심장하게) 조심해서요.
(정몽주는 별장을 나오고 이방원과 측근들은 정몽주를 문밖까지 배웅을 하고 다시 들어와서 자리에 앉는다.)
이방원 ; 떠보나 마나 역시 예상한 대로구나. 사나이 큰일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이지. 천하의 그 누가 내 앞길을 막는단 말이냐? (큰 결심을 한 듯) 아무래도 포은을 정리해야지 않겠느냐?
이방원 측근 1, 2 ; (아첨하듯이 콧소리를 섞으며)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지당하신 말씀이오.
이방원 ; (잠시 숨을 고르고 비장한 결심을 한 듯이) 여봐라, 밖에 조영규 있느냐?
조영규 ; 네. 나으리. 부르셨사옵니까?
이방원 ; 포은이 아버님 댁에 들려 병문안을 한다하니 선죽교 인근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포은을 죽이도록 하라.
조영규 ; 말씀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조영규는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이방원과 측근들은 무엇인가 긴밀하게 상의하고 있다. 이 때 대문 밖에 초선이가 나타난다.)
초선 ; 어젯밤 술자리에서 이런 말이 있었다지. 이방원이 포은 어르신의 의중을 떠보고는 뜻이 맞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했다는데. 아~ 어쩌나 이일을 어찌할꼬? 어르신은 분명코 손을 잡지 않으실텐데. 아~ 어쩌나 이일을 어찌할꼬? 내 은인, 내 생명, 내 사랑을 살려야해. (갑자기 번뜻 생각이 떠오른 듯) 이방원 나리가 했던 말이 있었지? 어떠한 소원이라도 들어주신다고 했지? 포은 어르신을 살릴 수만 있다면, 이 마음, 이 순정, 이 생명 바쳐서라도 포은 어르신을 살릴 수만 있다면...
(초선 서럽고도 비장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른다.)
초선 ; 까치도 은인 위해 제 몸을 던지는데 하물며 사람으로 은혜 갚지 않으리까. 이제껏 지켜온 순정 당신보다 소중할까. 한 떨기 모란꽃도 화려한 날 순간이고 봄바람 불듯하다 어느새 삭풍이니 젊음도 촌음(寸陰, 일촌광음 (一寸光陰)의 준말로 매우 짧은 시간을 일컫는다)이거늘 내 사랑보다 소중할까.
초선 ; (비장한 각오를 한 듯 크게 한숨을 쉬며) 이방원 나리, 저 초선이옵니다.
이방원 ; (놀라고 반가워하며) 아니, 뭐라고 초선이가 왔다고? 방금 정말 초선이라 했더냐? 천하일색(天下一色) 초선이가 자기 발로 찾아왔다고?
이방원 측근 1, 2 ; (콧소리를 내며) 네, 정말로 초선이라 했나이다.
이방원 ; 뭘 하느냐 어서 안으로 뫼시지 않고.
(이방원 측근 1, 2 서둘러 나가서 초선을 데리고 실내로 들어온다.)
초선 ; (고개 숙여 인사하며) 나리, 소녀 초선이옵니다.
이방원 ; (신이 나지만 점잖은 척 하며) 아니 이게 누구냐? 초선이 아니더냐? 그래 어인 일이더냐? 일단 방으로 들자꾸나.
이방원 측근 1, 2 ; (이방원이 측근을 돌아보며 눈치를 주자 눈치를 살피더니) 저희는 이만 물러나겠사옵니다. (콧소리를 내며) 나리, 좋은 시간 가지시옵소서.
이방원 ; 내 부를 때까지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거라. 그만들 나가서 일들 보시게나.
이방원 측근 1, 2 ; 네, 나리.(이방원 측근 1, 2는 서로 수군거리고 키득거리며 나간다.)
이방원 ; 어서 앉거라. (이방원과 초선이 앉아서 마주보고 이야기한다.)
초선 ; 네, 나리, 감사하옵니다. (머뭇거리다가) 나리, 실은 부탁 있어 왔사옵니다. 예전에 제게 했던 약속이 있으신데 지금도 그 약속을 들어주실 수 있으신지요?
이방원 ; 내가 누구더냐, 사나이중의 사나이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거늘 어찌 지키지 않겠느냐? 그런데 잠깐 그 약속이 무엇이더냐?
초선 ; 어떠한 소원이라도 들어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아직도 유효하신지요?
이방원 ; (곰곰이 생각하더니) 조건이 있었지. 내 너를 안을 수만 있다면 어떠한 소원이라도 들어 주겠다 약속했지. 그래 물론 지금도 유효하다만... 혹여 무슨 급한 소원이라도 생긴 것이냐?
초선 ; 네. 그러하옵니다.
이방원 ; 그 소원이 무엇이더냐?
초선 ; 실은 저를 구해주신 생명의 은인이 계신데 그 분이 위태로울 때 구해줄 수 있는 분은 나리밖에 없으실 것 같아 찾아왔나이다.
이방원 ; 그래? 은인이란 그 분이 누구신고?
초선 ; 왜나라에 끌려가서 하녀로 지낼 적에 바다 건너 구해주신 포은 어르신이시옵니다.
이방원 ; (깜짝 놀라며) 뭐라. 포은이?
초선 ; 그 분을 살려주시면 제 순정을 바치겠나이다.
이방원 ; (뭔가 알고 있는 지 떠보며 눈치를 살피며) 아니, 그런데 내가 그분을 죽이기라도 한다더냐?
초선 ; 소녀도 세상의 이치를 본답니다. 나리께서 그런 분이 아니신 걸 압니다만, 세상이 급변해서 조변석개(朝變夕改, 아침저녁으로 바뀐다는 뜻으로 계획이나 결정이 일관성 없게 자주 바뀜을 일컫는다. )하고 있어 난초 같은 어른에게 화가 올까 걱정이옵니다. 그런 날이 온다면 가장 힘이 되옵시고 구해주실 분은 바로 나리밖에 없사옵니다.
이방원 ; (잠시 고민하더니) 좋다. 내 너의 소원을 들어주마. 포은에게 위기가 오면 힘을 다해 살려주마. 어서 이리 와서 내 품에 안기거라.
초선 ; 감사하옵니다. 나리.
(두 사람 앞의 창호문이 닫힌다. 조명이 어둡지만 약간 보일 정도로 은은하게 어두워진다. 무대 뒤에서 불빛이 비치고 두 사람의 서 있는 모습이 실루엣으로 그림자로 보인다. 이방원이 초선에게 점점 다가선다.)
이방원 ; 이것이 웬 떡인가 봄바람이 불어오네.
초선 ; 한 떨기 모란꽃도 화려한 날 순간이고...
(초선이 뒷걸음질 치지만 이방원이 억지로 끌어안는다.)
이방원 ; 고목에 새싹 돋고 황조가 날아드네.
초선 ; 봄바람 불듯하다 어느새 삭풍이니.
(이방원이 초선의 마고자를 벗긴다.)
이방원 ; 천하의 절색이라도 이 몸 앞에 무릎 꿇네.
초선 ; 순정도 촌음이거늘 내 사랑보다 소중할까.
(이방원이 이어서 초선의 저고리를 벗긴다.)
이방원 ; (질투심을 느끼며) 나이 많은 포은이 나보다도 더 좋다고?
초선 ; 죽기 살기 도망쳐서 지켜온 이내 순정...(이방원이 이어서 치마를 벗겨서 던진다.)
이방원 ; (음흉한 표정으로) 살리려고 애써봐도 이미 때는 지나갔지.
초선 ; 이렇게 속절없이 버려질 순정인 걸...(이방원이 초선 위로 올라간다.)
이방원 ; 나이 젊고 힘도 좋은 내가 임자.
초선 ; 이 생명 바쳐서라도 살릴 수만 있다면...
(이방원 일어서며 승리감에 젖어 두 팔을 높이 뻗고 초선은 앉아서 흐느낀다.)
이방원 ; (아주 큰 소리로 사자가 포효하듯이) 나이 젊고 힘도 좋은 내가 임자.
초선 ; (흐느끼는 목소리로) 이렇게 속절없이 버려질 순정인 것을...
(조명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막이 내린다.)

(신동근 작, 지음오페라단 제공. 다음호에 제4막 마지막회 이어집니다)


강병찬 기자 / 입력 : 2018년 08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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